나는 대한민국 30代 해외 법인장입니다.
–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파격인사|홀딩스 해외법인/지사 7곳 중 5곳 30대 –
– “햇병아리가 뭘 알겠어” 냉소딛고 홀로 부임 2년도 안돼 매출 ‘잭팟’… “해봤어?” 정주영 도전정신 계승 –
<출처: 한국경제신문>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은 2019년 9월 영국에 버섯 생산·유통법인 스미시머시룸을 설립했다. 유럽 지역에 세운 첫 법인을 이끌 책임자로는 입사 5년차 김충기 매니저를 임명했다. 그는 1984년생으로 만 35세에 ‘상사맨의 꿈’으로 불리는 해외 법인장에 발탁됐다. 주위에선 “햇병아리가 뭘 알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는 “무모한 인사발령”이라는 평판을 단 2년 만에 바꿔놨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영국 주요 도시가 록다운(봉쇄)되는 악조건에서도 글로벌 유통기업인 테스코에 납품하는 점포 수를 800개에서 1150개로 43%나 늘렸다. 부임 첫해 500만파운드(약 79억원)이던 매출은 약 2년 만인 올해 두 배에 달하는 1000만파운드(약 159억원)로 커졌다.
그는 “유통업체 상품기획자(MD)를 설득하기 위해 쉬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며 “거래 요청이 번번이 막힐 때마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 창업회장의 말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28일 현대코퍼레이션그룹에 따르면 홀딩스 해외법인 일곱 곳 중 네 곳의 법인장이 MZ세대인 30대 직원들이다. 영국 외에도 캄보디아, 호주, 미국법인에서 ‘나홀로’ 부임해 발군의 성과를 내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골판지와 필름을 생산하는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는 36세 신동진 법인장은 발령 첫해인 2019년 440만달러(약 47억원)이던 법인 매출을 올해 1500만달러(약 178억원)로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신사업을 조기 정착시키려면 창의성과 열정을 지닌 젊은 주재원을 책임자로 보내야 한다는 정몽혁 회장의 결정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성과를 내면서 ‘무모한’ 인사실험은 이어졌다. 이명우 캄보디아 현대아그로법인장(1983년생),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법인장(1990년생) 등 혈혈단신으로 현장을 뛰어다니는 30대 법인장이 속속 탄생했다. 내년 초에는 미국 법인장에 2018년 입사한 4년차 직원 허결 매니저(1991년생)를 보낼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코로나라는 악조건을 감수하고 수출전선에서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지원자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코퍼레이션의 실험이 정주영 창업회장의 ‘도전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주변에서 ‘불가능하다’고 말릴 때 정주영 회장이 “이봐, 해봤어?”라며 일축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다.
■ ‘나홀로 부임’ MZ세대 상사맨…해외법인을 스타트업으로 바꾸다
– ‘정주영 정신’ 무장한 현대코퍼레이션 30代 법인장 –
– 코로나 뚫고 성과 증명, “애들이 뭘 하나” 비아냥 극복… 의류 포장재·농장 운영 등 신사업 개척해 매출 3배로 –
2019년 10월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의 캄보디아 패키징 법인장으로 발령난 신동진 책임매니저(1985년생). 그는 단신 부임 직후 가방·의류 브랜드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를 직접 찾아갔다. 패키징 법인의 기존 타깃은 중소형 주류·음료 업체의 포장재였다. 그는 법인 규모를 키우려면 대형 고객사를 유치해야 한다고 봤다.
그가 주목한 타깃은 가방·의류 업체였다. 고품질에 더해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친환경 국제인증을 받은 포장재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 법인장은 “실패하더라도 무조건 부딪쳐보자는 패기로 고객사들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글로벌 가방·의류 브랜드의 OEM 물량을 따내는 데 성공하자 대형 맥주·음료회사에서도 앞다퉈 계약을 맺자는 제안이 왔다. 그가 부임한 2019년 440만달러(약 47억원)였던 법인 매출은 올해 1500만달러(약 178억원)로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 입사 5년 만에 법인장 파격 발탁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 법인장(오른쪽)이 현지 직원과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버섯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해외법인/지사 7곳 중 4곳의 법인장은 1980~1990년대 출생한 30대 직원이다. 신 법인장(1985년생)을 비롯해 김충기 영국 스미시머시룸 법인장(1984년생), 이명우 캄보디아 현대아그로법인장(1983년생), 이종빈 호주 불라파크 법인장(1990년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경력은 대부분 5년 미만. 상사 부문 해외법인장은 최소 15년 이상 현장 경험을 쌓은 40~50대 베테랑 간부를 발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의 모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이 1976년 설립한 현대종합상사다.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의 주력은 해외 식량사업. 고객사와 제조사 간 중개를 통해 제품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트레이딩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왔다는 판단에서다. 식량사업은 트레이딩과 달리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하는 신사업이다. 해외에 농산물유통센터도 짓고, 농장을 운영해 수익도 내야 한다. 기존 종합상사 업무와는 다른 방식의 혁신이 필요했다.
그룹을 이끄는 정몽혁 회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정주영 창업 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정 회장은 상사업체가 지닌 역량과 자원에 더해 비즈니스 트렌드에 민감한 30대 MZ세대 창의력이 더해지면 무한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봤다. 법인장을 선임할 때도 나이와 상관없이 사업 이해도와 사업을 잘 키울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뒀다. 능숙한 외국어 능력과 네트워크 확보를 위한 친화력도 주요 평가 항목이었다. 이 결과 30대 직원들이 적임자로 선발됐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 스타트업 방식으로 운영
– 정몽혁의 파격 인사실험, “본사에서 일일이 지시 안해… 창의적 아이디어 발휘하라” –
정 회장의 인사실험은 2019년 9월 김충기 매니저를 영국 법인장으로 선임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0월 캄보디아에서 골판지와 필름을 만드는 패키징법인장으로 신동진 매니저를 발령냈다. 정 회장은 이들에게 “해외 법인을 전 세계에 거점을 둔 스타트업으로 운영해 달라”는 특명을 내렸다. 본사에서 일일이 지시를 내리지 않을 테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달라고 했다.
▲신동진 캄보디아 현대패키징법인장이 공장에서 골판지와 필름을 점검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선 30대 직원을 법인장으로 보내는 결정에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컸다. “어린 애들이 뭘 하겠느냐”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입사 5년차 법인장들이 모두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내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작년 10월엔 그룹의 최대 해외 거점인 캄보디아 현대아그로법인장으로 이명우 책임매니저를 발령냈다. 현대아그로는 열대과일인 망고를 재배해 한국 등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이 법인장은 “직책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며 “반드시 잘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로 업무에 임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엔 1990년생인 이종빈 매니저를 호주 유기농 버섯법인인 불라파크 법인장으로 발령냈다. 내년 초에 미국 버섯법인장으로 나가는 입사 4년차 허결 매니저는 선임 못지않은 업무 이해도와 특유의 친화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은 이 같은 인사실험을 다른 계열사에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젊은 세대에게는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회사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빠르게 발굴해내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2021년 12월 29일